새로운 길
스위스 도심 투어 (베른, 취리히)
11mn
2017. 8. 17. 17:36
혼자 떠난 스위스 여행 8일차
##1. Hotel Carina
호텔이 위치한 곳이 산간지방이어서 그런지 날씨가 꽤나 쌀쌀했다. 그래서 잠들기 전에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있다가, 이대로 잠들면 이대로 사후세계에 진입할 것 같아서, 긴 바지와 패딩 조끼를 입었다. 그걸로 부족해서 양말도 신었다. 손발이 따듯한 편이라 아무리 춥더라도 양말을 신고 잠들지는 않는데, 이는 아주 특이한 경우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아주 특이한 꿈을 꿨다.
배경은 비오는 시골의 한 대학교인데, 난 대학교 1학년이다. 그런데 이곳에 정말 내가 아는 모든 친구들이 다 이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무슨말인지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수업이 끝나고, 뚝방길을 따라 비오는 길을 걸어가는데 내 주변과 뒤로는 지금 현재의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 및 기타 모든 친구들이 다 같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그러다가 옆에 빈대떡을 파는 주막같은 곳이 보인다. 나는 뒤를 돌아서 오른팔을 높이 들어, 델타포스가 다음 공간으로의 진입을 위한 수신호를 보내듯이, 난 주먹을 쥐었다 펴고 검지를 뻗어 오른쪽으로 두번 찌른 다음,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서 동의를 구했다. 줄줄이 뒤에서 콜콜콜콜콜콜콜을 외친다. 하긴 말로 해도 되는데 왜 난 수신호를 보냈을까. 뭐 그건 꿈이기 때문에 입으로 말을 해버리면 난 3자가 보기에 잠꼬대를 하는것 처럼 보일 것이고, 소리를 내는 행동은 잠에서 깨기 쉬운 행동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발성 자체를 피한것 같다.
여튼 우린 다같이 그 주막에 들어갔다. 그리고 매뉴판을 봤는데, 글이 잘 읽히지가 않았다. 대충보니 뭐 어쩌구 저쩌구 모듬 전, 어쩌구 파전, 저쩌구 무슨 전 등등이 적혀 있었다. 난 무난하게 어쩌구저쩌구 모듬전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저쪽에서 '아 무슨 모듬전이야 진짜', '여기 모듬전 맛 없다던데' 등등 잡음이 많다. 어쩔 수 없이 난 주인아주머니에게 술이 좀 들어가면 멀 먹던지별로 구분을 못할테니 일단 막걸리부터 두되 달라고 했다. 밖에는 주룩주룩 비가 내리고, 안주없이 막걸리를 들이키는데,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막걸리가 너무도 행복했다. 물론 안주는 계속 없었다. 아마도 어제부터 계속 비가 주룩주룩 오고 오늘도 비가올 것에 대비하여 일정을 많이 변경해야 하니, 그런 무의식이 꿈에 반영된 것 같다.
샤워를 마치고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사실 이제는 스위스의 조식은 꽤나 기대를 하고 있다. 그 어느곳도 날 실망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Hotel Carina의 조식도 나를 꽤나 감동시켰다. 이곳은 꼭 조식을 위한 공간에 입장하면, 어떤 차를 마시겠냐고 물어본다. 참고로 Interlaken에서 묵었던 Hotel 델라빡은 아침에 커피, 홍차, 스위스 오보말틴 등등 다양한 옵션의 차를 권했다. 참고로 스위스 오보말틴은 따듯한 네스퀵이라고 보면된다. 한국말고 하자면 따듯한 제티?
여튼 이곳은 반찬의 가지수는 많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Zermatt 건물의 특징은 대부분 오래된 나무를 이용하여 인테리어를 했는데, 이것이 꽤나 따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다가 황색등을 그리 밝지않게 켜두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따듯한 느낌을 받는다. 빵, 치즈, 햄, 달걀등을 먹고 앞서 주문한 홍차를 마신다. 설탕을 한술 덜어 넣고 홍차를 홀짝거리니 목부터 대장까지 따듯한 안정감을 느낀다. 눈을 살짝 감고 한모금을 더 입에 덜어넣고, '아... 설탕을 너무 적절하게 넣었어.. 달지 않은데 떫지 않아... 아...' 라고 느낀다. 다시 눈을 떠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할머니 두분을 바라본다. 70은 다 되어보이는 할머니 두분이 재잘재잘 떠들며 아침을 즐기고 있다. 그렇게 Wendy와 Sally는 오랜만에 취리히에서 만나서 천천히 스위스를 여행하며 50년 전의 배낭여행 시절을 되새기고 있다. 우리 그때 이 옆에 오스트리아놈들이랑 맥주 마셨었잖니? 그때 그놈들이 건내준 물담배 미친듯이 빨아들이다가 나 기침하다가 토했던거 기억나? 꺄르르르르르르르르 역시 나이도 상대적인 가치라는것을 느끼게 된다.
##2. Back packer
여행을 하다보니 특히나 이곳엔 말 그대로 '배낭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나이대 또한 상당히 다양한데, 정말 갓 20살을 넘긴것으로 보이는 소녀부터, 백발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행을 하고 있다. 백발의 노인은 아직 자신이 건재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더 이상 세월이 가기 전에 빨리 이 아름다운 곳을 방문하고 싶어서 온 것일수도 있고,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소녀는 본인의 의지로 여행을 시작한 것일수도 있고, 부모님이 등을 떠밀어서 떠난 것 일수도 있다.
하루 약 20km의 트래킹을 하다보면, 그 코스코스 마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있고,모두 같은 양의 즐거움과 같은 양의 피로를 느끼며 여행을 하고 있다. 즉, 실제로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의 물리적 한계는 사실 여행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나 또한 나름대로 이 여행을 위해 준비를 해 왔다. 식비가 비싸기 때문에, 또 원하는것을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식습관도 1일 2끼로 조절을 해왔고, 하루 7~10km씩 달리며 기초체력을 키웠다. 물론 나도 겁이 났기 때문이다. 혹시나 산을 뛰어 다니다 일사병에 걸려 늑대의 밥이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모든것이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 비오는 First를 5살짜리 꼬맹이도 다녀왔으니 이 얼마나 쓸데없는 걱정이었나 싶다. 지금 내 옆에 앉아서 지도를 뒤적이는 저 20살짜리 소녀도, 걱정했던것 보단 의외로 재미있고 의외로 어렵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아마도 저 소녀의 부모님은 말로는 세계를 구경하고 오라며 등을 떠밀어 여행을 보냈지만 내심 걱정은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틈틈이 보내주는 그녀의 사진이나 메시지에 큰 감동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자기가 싼 똥에 뒹굴며 빼액빼액 울어대던 철부지의 모습이 눈에 훤한데, 혼자 지구 반대편에서 자기 몸집만한 백팩을 들쳐매고 지상 최대의 트래킹코스를 소화하고 있다니. 다시한번 생명의 신비함에 놀라며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떠벌리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녀는 지구 반대편에서 살고있는 사람들의 삶이 사실 크게 다르지 않고, 단지 나와 다른언어를 사용하고, 나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있을 뿐이란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이 사실 별게 아니고, 지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모습이 어떻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긴 여정이 끝나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면, 앞으로 자신이 어떤일을 해야할지,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해 그 형태가 보일것이다. 왜 언어가 중요한지, 왜 감정의 공감이 중요한지, 대체 문화는 무엇이며, 사람들이 어떤것을 좋아하고 어떤것을 싫어하는지, 세상엔 어떤 사람들이 있고 어떤 힘에 의해 이 하나의 큰 시스템이 돌아가는지 알게 될 것이다.
##3. Bern & Zurich
비가 온 덕분에 계획에도 없던 Bern에 방문하게 됐다. 이번에 스위스에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베른이 스위스의 수도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어느나라의 수도가 무엇인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것들이 수도에 집중되어 있어서, 수도와 수도가 아닌 도시에 대해 평가가 갈라지지 다른나라의 경우 도시의 성격에 따라 분류가 있을 뿐이다. 일단 스위스만 해도 취리히와 베른이 그렇다. 두 도시 모두 번화한 도시이지만 느낌이 약간 다르다.
물론 두 도시 모두 3시간 남짓되는 시간으로 모든것을 평가하긴 어렵지만, 뭐 평가라는 것이 꼭 씹고뜯고맛보고즐겨야 할수있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두 도시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나에겐 아주 단순하다. 바로 어느곳이 더 살고싶은가? 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취리히에 더 살고싶다. 일단 도시의 중앙에 큰 호수가 있어서 그렇다. 도시에 물이 있다면 난 무조건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물이 심각하게 깨끗하다. 도시의 한가운데 흐르는 물에 백조가 산다니. 난 태어내서 백조를 처음봤는데, 물이 하도 맑아서 백조의 검은 발을 동동 구르는것 조차 선명하게 보인다. 특히 그 백조가 날개를 가볍게 퍼득거리면 숨이 멎을 것 같다. 새가 이렇게 아름다운 생물이었나 싶다. 도심에 살고있는 비둘기의 날개짓에 더러운것이 많다고 비둘기를 피해다니는 인간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물론 그중엔 저 비둘기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다. 비둘기의 날개짓이 더러워지고, 그들의 발가락이 부러져 나간것이, 모두 공기가 오염되고, 새들이 마땅히 앉을만한 공간이 없어서 아스팔트에 급작스럽게 착륙을 반복하다가 발가락이 다 부러져 나갔다는것은 알고 있을까. 여하튼 이곳 강가엔 백조가 떠다닌다. 백조, 오리, 등등 평소에 보기 힘든 새들이 동동 떠다닌다.
또 취리히가 좋은 이유는 도시가 조용하다. 차분한 도시의 분위기가 모든 사람들을 차분하게 만든다. 각각 나누는 대화들도 모두 조용조용 나누고, 심지어 관광객들도 그 어떤 분위기에 매료되어 목소리를 낮춘다. 난 중국에서 3년 반을 살았기에 중국인들의 시끄러운 정서를 그리 욕하는 편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북적북적대는것이 뭔가 사람사는 맛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시는 그러한 정서조차 짓눌러 버린다. 아마 애초에 관광을 하기에 좋은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실제로 관광객의 숫자 자체가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 물론 이 점 또한 나에겐 매력적인 포인트이다. 아 그리고 생각보다 다른곳에 비해 음식도 맛있는 편인것 같다. Interlaken, Lucerne, Zermatt모두 음식은 가슴아픈 수준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식당같은 식당을 못가봐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Bern의 푸드트럭에서 먹은 퀘세딜라나 Zurich에서 먹은 HolyCow! 햄버거는 맛이 아주 괜찮았다. 물론 가격은 늘 그렇듯 아름다웠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출을 보며 강가를 한바뀌 뛰고, 샤워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서 일터를 향하는 내모습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흐뭇해진다. 아마 서울에서는 내가 죽을때까지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일이다.
##4. 스위스 여행의 끝
이제 오늘로써 스위스여행이 끝난다. 내일이면 프라하로 이동해 새로운 일정을 시작한다. 프라하를 다녀온사람들에 의하면, 프라하는 하루정도면 대부분의 장소를 둘러 볼 수 있고, 이틀이면 프라하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고, 3일 정도이면 식당 점원 이름까지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내 목표는 프라하 식당 전체 점원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다. 물론 내가 프라하에 대해 큰 애착이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고, 스위스의 일정을 늘리기도 그렇고, 중간에 다른 나라를 추가적으로 다녀오기도 그래서 프라하를 좀 널럴하게 둘러볼 생각으로 프라하의 일정을 조금 길게 잡았다.
프라하의 일정에 대해 대략적인 흐름을 구성 해 두고 지난 스위스 여행을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일단 스위스의 자연은 내가 기대 했던 것 이상이었다. 사람들도 친절했고, 교통편은 말도 안될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했으며, 물가도 충격적으로 비쌌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런 물가가 어느정도 이해 되기도 했다. 그 도시의 관리 정도는 화장실을 보면 안다고 했다. 스위스의 화장실은 대도시부터 산 꼭대기에 있는 화장실까지 그 어느하나 깔끔하지 않은곳이 없었다. 스위스 전역에서 나오는 모든 수돗물은 그냥 마셔도 될 정도로 깨끗했고, 모든 핸드 드라이어는 Dyson제품이었다. 스위스의 교통편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SBB Mobile)은 나의 위치와 목적지를 입력하기만 하면, 정확히 얼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며,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기차를 타고, 그 기차에 식당이 있는지, 어디가 1등석인지 2등석인지, 자전거는 실을 수 있는지 등등 궁금해 할만한 모든 정보를 깔끔하게 보여준다. 또한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단 한명도 영어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는 사람이 없었으며, 단 한명도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 장이 예민한 나에겐 음식에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배탈이 자주 나는 편이었는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배탈이 나지 않았다. 서울에 있으면 최소 일주일에 한번은 배탈이 나는데, 난 심지어 이것이 내 만성 질환이라고 생각 할 수준이었다.
숙소의 경우 내가 묵은곳은 일반적으로 평균 1박에 8~9만원 정도 하는 호텔이었다. 물론 스위스의 보편적인 물가에 비하면 가장 저렴한 숙소였다. 하지만 최하급의 숙소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돗물은그냥 받아마셔도 될 수준이었으며, 불편함을 느낀적은 한번도 없었다. 더구나 모든 숙소의 조식은 감동적이었다.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곳은 제주도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주도는 몇번을 가더라도 다음에 또 가고싶은 마음이 들게 해주는 곳이며, 갈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스위스 또한 수백개에 달하는 모든 트레킹코스와 등산코스 조합을 엮는다면 아마 수백번은 방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숙소에서 각각 어떻게 조식을 제공하는지도 궁금하고, 날씨의 문제로, 일정의 문제로 방문하지 못한 여러곳들이 아직도 많이 궁금하다. 여유가 된다면, 다음엔 가족과, 친구와 다시 이곳에 방문하고 싶다.
만약 누군가가 스위스의 여행을 추천하겠냐고 물어본다면, 난 갈등없이 이렇게 말할것이다. 두번 갈 여행을 한번만 가되 그것을 스위스로 가라고. 스위스는 분명 비용때문에 방문하기가 꺼려지는 곳이지만, 난 충분히 그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스위스를 방문하기 전까지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Rio de Janeiro였다. 물론 그 곳은 심각하게 위험하고 말도 안통하는 곳이지만, 특이한 지형과 기후에서 오는아름다움은 아주 색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젠 모든면에서 스위스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여행을 하면서 진지하게 부동산을 기웃거리며 집값을 알아본 곳은 이곳밖에 없을 것이다. 내일의 프라하도 아주 많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