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찰의 길
자취생이 요리에 심취하는 방법?
11mn
2017. 8. 21. 10:16
## 자취생이 요리에 심취하는 방법?
자취를 한 지도 어언 12년이 흘렀다. 20살부터 자취, 하숙 등의 생활을 시작했으니 이제 어디 가서, 아 제가 자취를 좀 해봤습니다. 하하. 라고 말할 수준 정도는 된다. 하지만 자취생의 주요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중, 나의 역량은 꽤 편중되어 있다고 본다. 크게 보자면, 그 주요 역량은 아래와 같다.
1. 청소 (정리)
2. 건강관리
3. 취미 생활
4. 요리
이 중, 1~3번의 경우 꽤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한다.
1번 청소의 경우 주 1회 빠짐없이 한 번씩은 청소를 하는 중이다. 잠깐 청소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을 논하자면, '자주 하되, 대충하자' 이다. 청소의 경우 100점짜리 청소를 하려면 상당히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하게 되고, 문제는 잠깐 뒤돌아서면 다시 더러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당한 수준의 청소를 자주 하는 게 좋다. 보통 방이 코딱지만 하기 때문에, 코를 후비듯 쓱쓱 파면 된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대충 자주 청소한다.
2번 건강관리의 경우, 최소 주 2회 달리기 및 주말 수영, 자전거 등을 병행 중이다. 또는 올림픽공원에서 원반을 던지곤 한다. 일단 운동의 경우, 스트레스 관리와 건강관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인생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운동을 1~2주간 하지 않으면 온몸에 독소(스트레스)가 쌓여서 괴로움에 허덕이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럴 때는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나간다. 그렇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뛰다 쉬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많은 문제가 해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3번 취미 생활의 경우, 여러 가지를 병행 중이다. 요즘엔 주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든지,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든지, 독서를 하며 여가를 보내고 있다. 잠깐 취미 생활에 대해 추천을 하자면, 깊게 심취한 한 두 가지의 취미 생활을 더욱 깊게 파고드는 것도 추천하지만, 사람에 따라 그것이 쉽지 않은 때도 있다. 하나의 분야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경우, 보통 하나의 취미를 유지하지 못함에 있어서 꽤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필자도 '나에게 꼭 맞는 취미 생활'을 찾기 위해 수년을 노력하고 있으나, 결국엔 그렇게 거쳐 간 수많은 취미 생활들이 결국 좋은 자양분이 되어, 또 다른 신나는 취미 생활을 찾게 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식견을 갖게 해 준다고 느꼈다.
문제는 4번 요리이다. 요리는 어떻게 보면 취미와 기초역량의 중간 단계에 있는 지표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식사를 '때운'다면 생존을 위한 섭취가 되겠지만, 요리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그것은 분명 요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요리를 하는 것은 아주 즐겁다. 각각 재료의 특성에 맞춰, 그것을 익히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창조의 연속이다. 하지만 요리의 완성은 그것을 섭취하는 것에 있다. 만약 내가 나만을 위해 요리를 한다면 그것이 그렇게 재미없을 수가 없다. 실컷 번지르르하게 만들고 예쁜 그릇에 담에 사진을 찍은 다음, 예능을 보며 그것을 우걱우걱 퍼먹고 있는 나의 모습을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게 되는 순간,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그 눈물이 나의 작품에 한 방울이라도 떨어지는 날엔, 요리고 나발이고 모든 것이 싫어진다. 그것이 바로 자취생이 요리에 심취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리를 위한 집단이 필요하다. 군대 제대 이후 미국에서 잠시 유학 생활을 할 때, 이를 완벽히 활용한 좋은 예가 있었다. 당시 같이 랭귀지스쿨 수업을 듣던 누님 한 분, 형님 두 분, 그리고 필자. 이렇게 네 명은 매일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매번 4인분의 요리를 하고, 그것을 맛있게 즐겼다. 우리는 서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요리를 했다. 한 형님은 전통 한국식. 한 형님은 미국식 퓨전, 그리고 누님은 일본식, 필자는 그냥 뭐 떠오르는 대로 만드는 프리스타일이었다. 그땐 참 요리라는 게 즐거웠다. 내가 열심히 만든 작품을,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고 그들이 즐겁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었다.
따라서, 요리를 시작하려는 자취생은 요리의 시작에 앞서, 누구와 함께 먹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함께 해두는 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