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메뉴에 대한 고민
## 저녁 식사 메뉴에 대한 고민
난 불쌍한 사람이다. 21세기를 사는 많은 사람이 먹는 재미를 느끼며 산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렇지 않은 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느끼는 즐거움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적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거나 막 닥치는 대로 입에 가져다 넣느냐? 그것이 또 그렇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들보단 예민한 몸뚱이를 가진 덕에, 음식이 제대로 조리되지 않았을 때 배탈이 잘 나는 편이다.
문제는 올해로써 자취 생활이 어언 13년째를 향하고 있고, 그러므로 밖의 음식을 먹은 지도 오래되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몸도 밖의 음식에 적응해 버렸고, 그냥 내 인생에서 먹는 것이란 뭐 이런 것이구나. 하고 일반화를 한 지 오래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 외부음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체형처럼 살이 찌거나, 배가 나오진 않았다. 그것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몸이 예민한 덕에, 맞지 않으면 배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겼다. 수년간 단순히 난 내 장에 문제가 있어서 배탈이 잘 난다고 생각했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사실 요리를 직접 해보면 알겠지만, 재료를 손질하다 보면, 바닥에 재료가 떨어질 때도 있고, 휘젓던 밥이 냄비 밖으로 튀어나올 때도 있다. 이때 심각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그냥 코를 후비던 손으로 밥을 집어 냄비에 넣고 옷에 손을 쓱쓱 닦는 것이다. 그렇다. 난 방금 더러운 주방의 세균을 몸속 깊숙이 집어넣었다. 나의 장은 이것을 몸에 남겨두지 않고자 '대장 초기화'버튼을 연타한다.
그렇다면 나의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1. 믿을만한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2. 어떻게 해서든 믿을만한 음식을 몸에 넣는다.
1번의 경우, 그 주방을 일일이 뒤져 볼 수 없기에, 청결도 테스트를 내 장이 직접 해야 한다. 따라서 난 괜찮은 레퍼토리를 찾기까진 심각한 탈수 및 만성 체력저하를 겪을 것이다. 갑자기 대한민국의 비양심적인 식당 업주들을 저주하고 싶어진다.
2번의 경우, 다시 말하자면 직접 요리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섭취한다. 이것이 현재 내가 택한 방법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자취의 경험은 길지만, 요리의 경험이 그리 길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내 요리실력은 아주 걸음마 수준이다. 더군다나, 뭔가 조리법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창조물을 침범하는 느낌이고, 뭔가 반칙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 요리는 항상 기상천외하고, 덕분에 항상 실패한다. 하지만 근간 들어서 인터넷의 많은 블로그를 통해 조리법들을 참조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뭔가 먹을만한 음식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느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훔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욱 빠르게 첨단을 걷기 위함이라는 것을.
나의 방법은 아주 단순했다. 고기 600g을 넣으라고 하면서 고추장을 2술 넣으라고 하면, 고기가 300g밖에 없기에 고추장을 한 술만 넣는다. 물론 라면을 이렇게 비례식으로 끓이면 망한다는 것 즘은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아직까진 이런 방법이 먹히고 있다. 가끔 매실 한술이라던지, 다진 마늘을 넣으라고 하면 적잖이 당황한다. 매실은 무슨 매실 주스도 안 마시는데 매실이 대체 어디 있는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재료는 포기한다. 왜냐하면, 그것과 비스름한 홍초라든지 사과식초를 넣으면 재앙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여하튼 이렇게 하루하루 요리를 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메뉴의 선정이다. '대체 뭘 해 먹을 것인가' 이것은 '대체 나의 적성은 무엇인가?' 만큼이나 어려운 문제이다. 오히려 이 문제가 더 쉽다. 왜냐하면, 먹거리에 대한 걱정은 무조건 오늘 안에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도 이 걱정은 날 괴롭힌다. 그나마 오늘은 적당한 해결책이 있다. 오늘은 동네의 새로운 마트에 갈 예정이고, 아마 저녁 맞이 할인묶음 판매를 하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저렴하고 맛있으며 영양가 있는 재료를 사는 것만큼, 큰 즐거움이 없다. 기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