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 VIP 패스 이용기 (융프라우요흐)

2017. 8. 17. 13:34새로운 길

혼자 떠난 스위스 여행 5일차

 
##1. 융프라우 VIP패스
'차가운 순대'님이 운영하는 스위스 여행 블로그에서 이번 여행의 정보를 많이 얻었다. 그 중에서도 웹페이지를 모바일 사이즈에 맞추어 제작해놓은 페이지는 특히 여행중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흥미로운것은 단연 융프라우 VIP패스였다. 
 
 다른 철도들과는 달리 융프라우를 오가는 철도는 별도의 요금이 발생한다. 뭐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우리나라의 한 여행사가 이 요금의 할인 티켓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할인 쿠폰 수준이 아니라, 별도의 양식으로 뽑아 제끼는 패스 자체를 기차역에서 구매 할 수 있다. 여행 하는 내내, 표를 사용하는 내내 대체 어떻게 이런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융프라우 철도회사 사장이 한국인 여자를 만나 결혼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뭐 아니면 어쩔수 없고. 여튼 그 VIP패스의 구성요소가 또 특이하다. 
 
  1. Interlaken Ost, Wilderswil, Lauterbrunnen, Grindelwald, Mannlichen, Kleine Scheidegg 등 융프라우로 접근하는 모든 루트의 기차, 곤돌라, 케이블카를 무제한 탑승 할 수 있다. 

  2. 융프라우에 가면 신라면을 준다;

  3. 융프라우에 가면 빅토리녹스 손톱깍기를 준다;;;

  4. 융프라우 및 First등 각종 추가 액티비티들이 모두 반값이다.

  5. Jungfraujoch - Kleine Scheidegg간 왕복 기차 예약을 할수있다 (엄청 붐빈다)

  6.  
이건 뭐 말이 안된다. 덕분에 손톱깍기도 받고, 만년설 보며 신라면도 먹었지만 참 나는 너무 작은 우물에서 푼돈을 벌며 살고있는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다시한번 들었다.
 
여하튼 이런 이상한 구조의 혜택들에 대해 묻고 따지고 확인하다 보니 기차시간을 놓쳐버렸다. 뭐 이런걸 대비해서 일정과 일정간 충분한 버퍼를 뒀고, 이런걸 대비해서 일찍 출발했다. 세상 뭐 다 그런게 아니겠는가. 
 
##2. Mannlichen - Kleine Scheidegg
맹리햏 이라고 읽어야 하나? 대체 이동네 말은 발음도 따라하기 어렵지만, 이름이 고품격이어서 그런지 풍경도 참 고품격이다. 정말 말도안되는 시야가 눈에 펼쳐지는데, 아침에 루테인을 먹고오길 잘했다. 정말 엄청나게 넓은 시야가 탁 트여있는데, 정말 당장 영화 배경으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 심지어 후생에는 범고래로 태어나려고 했는데, 그냥 독수리로 태어나는것으로 바꿨다. 이 계곡 구석구석을 날아다니면 그것으로 참 행복할 것 같다. (하지만 의외로 동물이 많이 보이지 않아서 굶어 죽을것 같은 걱정이 들었다. 독수리를 취소할 수도 있다.)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도 모르게 인사를 건냈다. Good morning Sir? Hello? 등등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으며 지나간다. 그러다 이상이 좋은 사람들에겐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단 한번도 거절 당한 적 없다. 당연히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 준 다음 한번 확인 해 보라고 하면, 에이 뭐 잘 찍었곘지. 난 너의 사진을 믿어! 라고 하고 그냥 갈 길을 간다. 물론 나중에 확인해보면 쓸만한 사진을 건지긴 어렵다. 하지만 뭐 그런게 다 혼자하는 여행의 재미이다. 
 
 Mannlichen에서 Kleine Scheidegg(클레인 쉐히뎈 이라고 읽어야 하나? 참 어렵다)까지 가는 트래킹 코스는 약 2시간 정도로 길도 아주 평평하고 멋지다고 하길래 주저없이 걷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걸어가다가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하고 우와~ 하고 사진한번 찍고, 이 행동을 한 50번쯤 반복하다 보니 목적지에 다다랐다. 내가 생각보다 걸음이 빨랐는지, 예정시간보다 약 1시간정도 먼저 도착했다. 다음 코스는 Jungfraujoch(융프라우 산의 꼭데기를 융프라우요흐 라고 한다더라)인데, Kleine Scheidegg에서 사람들이 상당히 붐벼서 이 구간이 예약이 필요 한 것이다. 하지만 예정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바람에, 혹시나 시간 변경이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안된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주변 찻집을 찾다가 한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Swiss Ovamaltine을 시켰다. 스팰링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위스식 코코아라고 보면된다. 뭐 이동네 사람들은 자주 먹는다고하니 기왕 차 한잔 할꺼 스위스 식으로 즐겼다. 물론 가격은 깔끔하게 6천원 이다. (대놓고 티백 던져주면서 6천원 이라니 ㅎㅎ)
 
##3. Jungfraujoch
예약된 기차를 타고 올라갔다. 말 그대로 주구장창 터널로 올라간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중동인과 중국인이 북적대는 전형적인 관광지였다. 이곳에 오니 너무 에너지가 빠졌다. 물론 갑자기 높은곳에 올라와서 고산증 증세를 보인것도 있지만, 기왕 주는김에 만년설 보며 신라면을 먹었더니 속도 별로 좋지 않다. 더군다나 워낙 고지대라 기온도 많이 낮아서 여튼 이리저리 불만족스러웠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바퀴 슥 돌고 사진좀 찍고 얼른 내려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내려가는 예약도 변경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과연 그렇다고 이걸 구분해서 알아 내겠어? 라고 생각하고 당당히바코드에 대려던 찰라, 앞에있는 중국인 단체가 주구장창 패스를 찍어댄다. 허... 역시 착하게 살길 잘했어 라고 생각하면서 내껄 찍는데 역시나 삐빅 하면서 안된다고 나온다. 그 상황에서 이미 몸뚱이는 게이트를 지난 상태였기 떄문에 그냥 머리를 갸우뚱 하며 지나간다. 착하게 살자. 
 
##4. Eiger Trail
사실 오늘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 Eiger Trail이었다. 융프라우 봉우리의 옆에 Eiger라고 하는 또 높은 봉우리가있는데, 그걸 트래킹 하는 내내 볼 수 있는 트래킹 코스이다. 물론 저 아래로는 Grindewald가 보이고 사방으론 초원이 펼쳐져있다. 정말 내가 상상하던 그 스위스의 트래킹 코스였다. 이상하리만치 컨디션이 다시 좋아졌고, 난 돌밭을 살짝 조깅하듯 걷기 시작했다. 
 
 다른 트래킹과 마찬가지로 1. 걷기 2. 놀라기 3. 사진찍기 를 연달아 반복하며 가고 있는데 살짝 배가 고프다고 느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는데, 이 넓은 공간에 인간이나 동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나만 덩그러니 있단것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난 이런 기분이 너무 좋다. 이 넓은 공간이 온전히 내것이라는 느낌이랄까. 마치 넓고 조용한 카페에 갔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가장 좋은 자리를 내가 골라 혼자서 차를 마시는 그런 기분이랄까.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어쩔 수 없이 넓은 집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전까진 그냥 인기없는 공공장소를 찾는게 나을 것이다.
 
##5. 스위스 최고의 식사
 한참을 걷다보니 점점 힘이 빠지는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것이 시계를 보니 여기까지 걸은 걸음이 약 25,000보였다. 사실 이제 10,000보 정도는 뭐 걸은것 같지도않다. 여튼 그러다가 저 앞에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기분은 마치 한양에 급한 소식을 전하려 산과물을 밤새도록 건너온 삿갓을 쓴 메신져 같다랄까. 눈 앞에 보이는 마을을 보며 걸어가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가 이런곳에서 조난을 당하면 어떨까? 일단 눈앞에 알프스 에비앙이 흐르니 그래도 2주정도는 살 수있을 것이고, 여름이니 밤에만 조심하면 얼어죽진 않을테고, 문제는 동물이 보이지 않아서 배가 많이 고플텐데, 벌레 소리가 들리니 귀뚜라미를 잡아먹어야 하나? 근데 불은 뭘로 붙이지? 귀뚜라미는 그냥 먹어도 되겠지? 근데 내가 귀뚜라미는 먹어도 되나? 메뚜기는 먹어 봤는데? 이런 잡다구리한 생각들을 하다보니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눈 앞에 식당이 보여서 대뜸 들어갔다. Grindewald가 멀리 보이는 멋진 풍경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옆 테이블에서 매뉴판을 빌려왔다. 뭐 역시나 뭐가뭔지는 모른다. 그냥 뭐 양파를 어쩌구 해서 감자가 어쩌구 계란이 어쩌구 치즈가 어쩌구 뭐 이런 내용인데, 어쩌구에 저쩌구만 해도 수억만가지의 음식이 나올 터, 그냥 바로 주인장을 불렀다. 
 주인장이 오는 도중 혹시나 해서 보니, 가격대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물론 매뉴를 추천 받은 다음 그게 좀 비싸면, 난 돈이 없으니 적당한걸로 골라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고 주인장이 추천한 것은 20CHF짜리로 뭔지 모르지만 아주 Swiss Swiss음식이라고 했다. 너무 다행이다. 이 기회에 스위스 음식을 먹는다고 생각하니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음료는 뭘로 할것이냐고 묻길래, 콜라를 달라고했다. 이런 컨디션에 맥주를 마시면 위에 상상한 대로 조난 당할것이 뻔했다.
 
 콜라를 반쯤 원샷 한 다음 음식을 기다리며 호텔로 돌아가는 차편을 알아봤다. 정말 해외에서는 구글의 교통편 설명이 예술적이다. 여하튼 약 25분 후에 Alpiglen에서 출발하는 기차가 들어오는데, 문제는 이 다음 기차가 1시간 다음에 있다. 이곳에서 한시간을 더 있고싶진 않았기에, 난 25분간 음식을 다 먹겠다는 결심을 한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중 음식이 나왔고, 일단 크게 놀랐다. 무슨 음식이 이렇게 아름답지? 마치 그림작품을 보는 듯 했다. 아마 내가 배가 많이 고파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색상 구성이 너무 완벽했다. 특히 파란빛의 꽃으로 준 포인트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이곳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총 걸은 걸음은 약 27,000보에 달했고, 난 고칼로리의 음식이 아주 필요했다. 생각해보면 어제도 캐녀닝을 하고 음식을 충분히 섭취 못해서 자는내내 몸이 아주 괴로웠다. 마치 올림픽 공원에서 16km를 뛰고 물만 마시고 잠든 후의 후유증 같았다. 여튼 나온 음식은 충분히 고칼로리였고, 에너지를 보충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차 시간이 거의 다가왔고, 음식의 2/5정도는 남겨야 할 판이었다. 어쩔수 없이 또 주인장을 불렀다. 이 음식 너무맛나서 다 먹고싶은데 곧 기차가 들어와서 그걸 타야한다. 혹시 이걸 포장 해 줄 수있는가? 알루미늄호일에 담아 준다고 한다. 총 가격은 24CHF가 나왔다. 25CHF를 줬다.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팁을 줬다. 그만큼 만족스러웠다. 
 결국 난 포장된 저 이름도 모르는 음식을 잘 받아서 가방에 넣고 기차를 타는데 성공했다.
 
##6. 내일은 비온다던데...
내일 원래 계획은 First를 가는 것이다. 하지만 11시부터 비와 번개가 친다고 한다. 내 신발은 세상에서가장 멋진 운동화 이지만, 비가오면 물이 들어간다. 양말이 젖는다. 하.. 사실 뭐 오늘 산을 워낙 많이 다녀서 트래킹에 대한 욕구는 완전히 해소 된 상태이다. 뭐 정 안되면 융프라우 아래 주요 도시나 돌면서 죙일 뭐 맥주나 마시고 차나 마시고 돌아댕기는 것도 좋을것 같다. 더욱이 옆팀 회사 선배가 마침 라우터브루넨에 내일 오후 도착한다고 하니 뭐 비오면 맞고라도 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