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프라하 4만보 도심투어 - Brix Hostel

2017. 8. 18. 13:17새로운 길

혼자 떠난 체코 여행 2일차

 

 

##1. 숙취
 오랜만에 늦게까지 술을 마신 덕분에 11시가 다 되어도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확실히 예거마이스터와 맥주를 함께 마신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물론 뭐 그래도 소주에 비하면 숙취가 적었다. 어제의 하루를 돌아보며 즐거웠던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다보니, 하늘이 점점 맑아지는게 보인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 운은 정말 심각하게 좋은 것 같다. 파란색 하늘 사이로 하얀 구름들이 떠있는걸 보니 나도모르게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눈을 뜨자마자 호스텔앞의 구멍가게 에서 코코넛 워터를 사다가 두팩 들이킨게 이제 효과가 있는것 같다. 숙취 해소용으로 여명808을 마셔보진 않았지만, 일단 나에겐 코코넛 워터는 숙취 해소의 필수품이다. 정말 몸에 쫙쫙 붙는다랄까. 아침을 가볍게 먹을까 했지만 기왕이면 나가서 맛난것으로 먹을 생각에 호스텔에 준비된 빵쪼가리는 거들떠 보지 않았다. 썬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을 꼽고 그렇게 숙소를 나섰다.
 
##2. 뜻밖의 여정
뜻밖의 여정이라. 참 재미있고 멋진 말이다. Hobbit: unexpected journey를 번역 한 것인데, 실제로 영화는 안봤지만 아마도 호빗끼리 동네에서 공을 차며 놀다가 공이 개울가로 굴러 떨어져서 카약을 타고 개울가를 따라 떠내려 갔더니 그곳에서 반지를 찾고 뭐 그런 내용일 것이다. 여튼 오늘 나의 여정이 딱 그짝이었다. 
 
 나에게 이 호스텔을 소개해준 철환이의 가이드에 따르면, 내가 사람많은 장소를 싫어할것이기 때문에, 도시 남쪽의 비셰흐라드에 방문해 보라고 했다. 프라하의 주요 관광지 위치를 보니 비셰흐라드에 먼저 방문 한 뒤, 강을 따라 올라오면서 주요 관광지를 들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 딱 그려졌다. Brix hostel에서 비셰흐라드 까지는 도보로 1시간, 거리로는 4.2km라고 나왔다. 그 정도야 뭐 스위스에서 트래킹하던 거리에 비하면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빈속으로 숙취와 함께 비셰흐라드로 향했다.
 
##3. 가는날이 장날
 지도를 보며 비셰흐라드로 걸어가다 보니 공원이 하나 보인다. 날씨가 맑다보니 공원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햇빛을 즐기고 있다. 공원에 기차역의 이름이 낯익어서 자세히 보니, 어제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올때 사람들이 우르르르 내리던 역이다. 그래서인지 한 손에 케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고 보니 유독 이 동네 사람들은 흡연률이 높다. 길을 걸어 가면서, 주변에 아이가 있던 없던 잘 피운다.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엄마도 피운다. 어릴때 아이의 간접 흡연이 두뇌의 발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결국  그것은 그 아이의 미래 경쟁력의 저하를 야기한다는 것을 아마 모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니 세상 나같은 꼰대가 또 없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뇌는 중요하다.
 
 길을 계속 걷다보니 넓은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떠들고 있다. 맑은 날씨 덕분에 광장 끝까지 사람들이 보인다. 대체 뭐땜에 사람들이 모여있나 봤더니 LGBT 퍼레이드를 한다. 대체 왜 가는곳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이벤트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난 유럽에 살아야 뭐가 좀 잘 풀리려나 보다. 이어폰을 잠시 빼보니 Don't stop me now가 나온다. 잠시 나도 프레디 머큐리가 되어 노래를 크게 부르며 길거리를 걸어간다. 누가 생각했는지 무지개를 LGBT의 상징으로 정한건 참 잘한것 같다. 문득 무지개는 7가지 색깔이니 성적취향에 대해서도 7가지의 구분이 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지도를 보며 걸어가다가,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가 아니기에 그냥 재미있어 보이는 곳으로 계속 걸어간다. 한참 걸어가다보니 멋진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실용적인 면과 예술적인 면을 적절히 혼합한 저 시대의 삶은 하루하루가 꽤나 즐거웠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예술적인 행동과 생각을 강요당하는 사회라면, 반대로 많은 것들에 대하여 가식적인 행동과 생각들을 했어야 할 것이다. 예컨데 도저히 입을수가 없는 옷인데 코르셋을 심각하게 죄어두어, 신진대사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오늘따라 나도 모르게 문체가 의사 소견서 같다. 
 
 길거리를 걷다보니 고흐가 정신을 놓는데 크게 일조 했다는 압생트(Absinth)를 파는 가계가 보인다. 압생트는 알콜도수가 70도가 넘어가고, 많이 마시면 정신이 나가버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에선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전에 기회가 되어 마셔본 적이 있는데, 그 향이 워낙 독특해서 잔디로 술을 담군 것 같다. 만약 그때 압생트를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저 독특한 병에 든 죽음의 독약을 아마 한병 사왔을지도 모른다. 
 
 계속 길을 걷다가 강가 쪽으로 나와보니 확실히 강변의 경치가 엄청나다. 비슷한 높이로 줄줄이 늘어져있는 오랜된 건물들이, 상해의 강변에서 보던 모습과 비슷하다. 아마도 저 시대때는 저런 건축양식이 전반적으로 유행했었나 보다.
 강을 따라 비셰흐라드를 찾아 죽 내려가다 보니, 강변에 장이 열렸다. 
 어딜가나 생맥주를 판다. 처음에 Brix hostel에 도착해서 라거를 몇잔 마셨는데, 대체 이게 뭐가 맛있나 싶었다. 뭐 맛이 없다기 보단 그냥 일반적인 맥주 맛인데, 그렇게 난리 칠 필요 까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흑맥주를 마셔보지 않아서 하는 소리였다. 흑맥주는 정말 괜찮다. 살짝 달달 하면서도 벌컥컥 잘도 넘어간다. 이전에 Guiness맥주가 사실 뭐 비타민도 들어있고 몸에 좋은 요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뭐 정말 그런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내가 마신건 Guiness는 아니다. 장을 구경하고 주욱 계속 내려가니 처음 목적지인 비셰흐라드가 멀리 보인다. 사실 그곳이 뭐하는 곳인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른 상태에서 출발한 것이었지만, 저 검은 건물이 나의 목적지라는 것을 바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
 
 ##4. 진정 뜻밖의 여정
 딱 이때쯤 속이 좀 안좋았다. 아무래도 어제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있고, 강가의 찬 바람에 노출되다 보니 배가 점점 아파오는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엔 화장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뭐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기에 주변의 체코 음식점을 찾기 시작했다. 멋진 체코음식을 먹기 위해 숙소부터 한참을 걸어 왔는데 아무것이나 먹을 순 없었다. Tripadvisor를 통해 가장 가깝고 평이 좋은 체코음식점을 찾았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약 1.2km정도? 그정도야 뭐 이젠 보편적인 이동 거리라고 생각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산이 나온다. 산 까지는 아니지만 동산 정도는 되겠다. 길이 계속 오르막 길이다. 길이 너무 한적해서 이상할 정도다. 마치 대학교 기숙사로 올라가는 지름길 같다. 열심히 올라갔는데 아무것도 없다. 지도 상으론 도착했다고 나오지만, 이 주변은 음식점이 있을만한 곳이 아니다. 다시 Tripadvisor를 켜서 해당 음식점의 덧글을 보니, 찾아가기가 정말 어려웠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하지만 음식은 최고란다. 동산의 가장 높은곳에 문을 거의 닫은 박물관이 있다. 그런데 지도상으로 보면 박물관 안에 음식점이 있다. 그래서 박물관에 들어가려 하는데, 문을 닫았다. 걷에 그 어떤 표지판도 없다. 생각을 가지고 장사하는 곳이라면, 이렇게 찾아가기 어렵게 해 둘 수가 있을까?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아래쪽으로 조금 걸어가는데, 그나마 식당으로 의심되는 공간이 보인다. 
 
정말 너무도 반가웠다. 이제 맛있는 체코 음식을 먹고 아픈 배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주 정신적으로 건강해졌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뭔가 최소한 중요 가족행사 정도가 있을때만 올것같은 분위기 이다. 잘은 모르지만 의외로 음식값이 비쌀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든다. 하지만 거기까지 걱정 할 필요가 없었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는데, ㄷ자 모양으로 사람들이 둘러 앉아있고, 가장 중앙에는 드레스를 입은 여인네와 턱시도를 입은 남정네가 있다. 결혼식 중이었다. 모두가 나를 뚫어질 듯 처다봤다. 번뜩 신부를 바라보며 How did you do that!!!! 이라고 외치고 나가볼까 하다가, 비련의 신부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돌아 나온다. 그리고 직원에게 혹시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식당 전체가 예약 된 상태라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러면 혹시 화장실이라도 쓸 수있냐고 물어본다. 화장실이 저 신부 뒷쪽에 있단다. 웃음이 난다. 그래 이게 삶의 재미지. 주변에 혹시 괜찮은 체코 음식점이 있냐고 물어보니, 좋은곳이 있다면서 알려준다. 저쪽 계단으로 내려가서 쭉 직진하면 된단다. 이름이 뭐냐니까 asjfdklasjfekl란다. 스팰링을 좀 알려달라고 한다. 현재 위치에서 1.5km정도 떨어져 있다. 이건 좀 어렵겠다 싶었다. 어쩔수 없이 일단 움직여야겠단 생각에, 돌돌 도는 계단을 따라 내려온다. 한방향으로 빙글빙글 도는 계단이 꽤나 어지럽다. 신나게 돌고 내려오는 공원이 나온다. 그래 보통 공원엔 화장실이 있지. 하지만 그건 보통 공원이 그런 것이고 여긴 없다. 갑자기 한국이 좋아진다. 
 
 갑자기 올림픽 공원이 생각난다.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꼬맹이들을 놀이터에 풀어놓고 엄마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아주 평온한 관경이다. 하지만 계속 화장실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번쩍거리는 건물이 하나 보인다. 아무래도 전시회등을 하는 건물 같다. '희망'이라는 것을 가슴에 품고 나아간다. 건물이 닫혀있다. 다시 지도를 켠다. 주변에 지하철역이 보인다. 하지만 방향으로 보자면 그 위치는 저 반대쪽에 보이는 산 위다. 지친다. 하지만 다시 걷는다. 길을 걷다보니 어제 집시들을 만났던 곳 같은 느낌의 지하도가 나온다. 대낮이지만 어두컴컴하다. 맞은편에서 사람이 걸어온다. 저 품속에 시퍼런 사시미가 없기를. 다행이 없는듯 하다. 다시 계단을 올라간다. 다시 지도를 켠다. 공연장이 보인다. 잠겼다. 그렇다 삶은 이렇게 원하지 않게 위기를 맞이하고, 또 그러한 위기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스스로 부여하며, 때론 그것이 나를 더 새로운 곳으로 인도한다. 이것이 혼자하는 여행의 진정한 묘미이다. 
 
 멍해진 상태로 길을 좀 더 걷다보니 피자집이 보인다. 그래. 체코에서 먹는 피자는 뭐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피자집 이름이 인디언 피자이다. 제대로 미국식이다. 털보 주인장에게 맛난걸 추천해달라고 한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지만, 우린 서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잘 알고있다. 'Big eagle'을 추천한다. 큰 독수리라니, 뭐 잘 모르겠고 달라고 한다. 그리고 드디어 화장실에 간다. 장속에서 변이 빠져나가고 느껴지는 단전밑의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쁘지 않다. 깔끔히 손을 씻고 나가니 콜라가 준비되어 있다. 사실 이렇게 지칠때 마시는 콜라 한잔이 꽤나 에너지 보충에 도움이 되는듯 하다. 고당분에 카페인까지. 커피보다 나을수도 있다. 한국에 있으면 1년에 한번도 콜라를 마시지 않지만, 이상하게 밖에 나오면 그렇게 콜라가 땡긴다. 피자를 기다리면서 가계를 둘러본다. 아기자기하게 인테리어를 잘했다. 털보 사장에게 사진이나 한장 찍자고 한다. 그런데 옆에서 요리를 도와주던, 스릴러 영화에서 주인공을 배신할것 같이 생겼으나 생긴것 자체는 미남형인 친구가 고개를 푹 숙인다. 갑자기 토핑 구성에 집중하는가 싶어서 잠시 셔터 누르는 것을 지체 시킨다. 하지만 고개를 들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 피자 장인은 아닌것 같다. 아마 개인적인 사정으로 프라하에 숨어 빚쟁이들을 따돌리는 중이거나, 아니면 피자의 신이 되어 세상에 나가기 전까진 어디에도 얼굴을 알릴 생각이 없는 것일 거다. 콜라를 반쯤 마시고 신발을 벗는다. 과열된 나의 발바닥을 안정시킨다. 마침내 Big eagle이 나온다. 어떤 이유로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맛은 나쁘지 않다. 계란, 양파, 치즈 등등 맛있는건 다 넣었다. 따라서 맛있다. 피자를 마저 삼킨 다음 창밖을 바라보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멍하게 창밖을 보고 있자면 에너지가 다시 회복되는 듯 하다. 심장이 피를 온몸 구석구성 공급할 때마다 피로감이 사라지는 듯 하다. 
 
 피자 집 옆에 카페가 있었던 것 같다. 피자를 먹고 카페에서 커피도 한잔하면 또다시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피자와 콜라 값으로 약 6천원을 지불한다. 다들 체코체코하는 이유가 있었다. 약 60%회복된 몸을 이끌고 다시 옆의 카페로 들어간다. 발가락이 아푼걸 보니 물집이 잡힌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길래 일단 커피부터 주문한다. 아무래도 속을 따듯하게 어루만져주는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우유가 좀 섞인 커피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라떼 마끼아또를 주문한다. 취리히에서 화살맞은 사자상을 구경할때 너무 더워서 카페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주문한 것이 라떼 마끼아또 였다. 시원 달달한 카라멜 마끼아또를 생각하며, 뭐 비스무리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뜨거운 라떼가 나왔다. 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라고 혼란스러웠던 것을 기억하며, 이번엔 내 의도로 라떼 마끼아또를 시킨다. 우유와 커피와 거품의 층이 뚜렸하다. 각각 2cm는 되는것 같다. 입으로 가져가 후 불고 한모금 삼켰더니 거품이 들어온다. 문득 프라하에서는 맥주를 주문하면 보통 거품이 많이 생기도록 맥주를 부어 준다는것이 생각났다. 물론 그래서 라떼 마끼아또에 거품이 많은것은 아니다. 숟가락으로 돌돌 저어 층층이 분리된 커피를 다방커피 색으로 합체 시킨다. 커피를 한모금 입에 가져다 물며 창밖을 보니, 한 아주머니가 잡지를 보며 세상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다. 동네에 이런 카페가 있다면, 나도 아주 많은 시간들을 보낼 것이다. 이렇게 아무도 입으로 대화하지 않고 속으로 자기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 또한 마음이 차분해 진다. 그리고 나도 나에대해 더 묻고 답한다. 
 
 ##5. 비셰흐라드
 커피를 마시고 나와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걷기전에 얼만큼 걸었는지 보니 2만보가 넘었다. 일정의 반을 소화했는데 2만보라니. 오늘 아마 4만보는 걸을 것 같다. 4만보라니. 살다살다 이런날도 오는구나. 뭔가 뿌듯하다.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하지만 걸음이 쉽지가 않다. 물집이 잡힌 오른쪽 넷째 발가락이 좋지 않다. 대체 왜 10개의 발가락중에 그 아이만 아플까? 아마도 나의 걸음걸이가 나도 모르게 오른쪽 넷째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구조여서 그런가보다. 아니면 오른쪽 넷째 발가락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원래 정신력이 약한 아이라 금방 들어누웠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됐든, 발가락에 밴드라도 감지 않으면 오늘이 더 어려워 질 것 같다. 그리고 Mini market이라고 쓰여있는 구멍가계들에 들어간다. 하지만 어디도 밴드를 팔지 않는다. 구글 지도를 보니 비셰흐라드까진 거리가 꽤 있다. 하지만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것 같다. 그러나 난 버스표가 없다. 프라하의 교통시스템은 꽤나 재미있는데, 일단 탑승마다 티켓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약간 스위스와 비슷 한 느낌인데, 이곳은 각각 30분, 90분, 1일권 등등 기간제로 티켓을 구입하고, 각 교통편 마다 그 티켓의 시작을 기록하는 기계를 사용한다. 그러면 시작 시간이 티켓에 기록되고 그 이후부턴 표검사를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주변 어느곳에서도 티켓을 살 방법이 없다. 저 맞은편에 동전을 넣어 티켓을 구입하는 기계가 보인다. 하지만 난 충분한 동전이없다. 아마도 30분짜리 티켓이 약 20~30 코룬정도 하는것 같으나, 내가 가진 동전이 그만큼이 안된다. 그렇다고 지폐가 들어가지도 않는다. 구멍가계에서도 티켓을 팔지 않는다. 그렇게 내적갈등에 시달리다보니 X7번 버스가 왔다. 분명 이 버스는 비셰흐라드로 가는 버스가 맞다. 일단 달려서 버스에 탄다. 무임승차를 하다 걸리면 원래 비용의 수십배를 물어야 한다. 그래. 걸리면 물자. 일단 주머니에 어제 끊어둔 90분짜리 표가 있고, 검표원이 타게 되면 난 태연한 연기를 하다가, 아이코 이런 잘 몰랐네 라고 징징대겠지만, 정 돈을 다 내라면 내는 수 밖에. 다행히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 이렇게 범죄는 우리 주위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다. 
 
 약 세정거장을 가서 얼른 내린다. 대체 뭐라고 읽는지 알수가 없는 정류장에 내려서 비셰흐라드를 향해 올라간다. 걷다보니 약국옆에 있는 구멍가계가 보인다. 뭔가 저기엔 밴드를 팔것같다. 신기하게도 팔고 있다. 1500원을 주고 밴드를 산다. 맥주 한잔과 같은 가격이다. 그리고 비셰흐라드에 드디어 도착한다. 
 지도상으로 보자면 무슨 묘지가 중앙에 있어서, 그냥 공동묘지라고 생각했다. 뭐 공동묘지라도 구경할만 하니 철환이가 추천을 했을 것이다. 일단 단순히 공동묘지는 아니었다. 벽돌로 쌓아올린 성곽이 보이고, 안엔 성당이 있다. 이곳의 세세한 배경을 이해하기 보단 현재 보이는 모습에 더 집중하는것이 나에게 더 잘 맞기에, 주변을 열심히 둘러본다. 지대가 꽤 높다보니 시야가 아주 넓다. 구름이 하늘을 적당히 매우고 있어서, 구름사이로 이따금 쏟아지는 햇빛이 아름답다. 가는곳마다 Light curtain이라니, 지금이라도 유럽로또를 사야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곽 위에서 바라본 프라하의 모습은 분명 다른 도시와는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제각기 다른 형태의 건물이 있는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전체가 비슷한 양식의 건축물로 유지되어 있기에, 프라하 전체가 하나의 집인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런모습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프라하를 찾게 만드는 것 같다. 
 
 성곽의 내부는 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날씨가 좋다보니,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도 있고, 강아지에게 테니스 공을 던져, 강아지의 본능을 유지시켜주는 사람들도 있다. 저 멀리 바이올린 소리가 들린다. 후드티를 입은 누님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이럴때는 참 나도 악기를 하나 제대로 배워둘 걸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만약 진정 버스킹에 뜻을 두었다면, 난 노래를 하는게 더 낫다고 항상 생각해왔기 때문에 쓸데없는 스트레스는 다시 넣어둔다. 누가 듣던 말던 열정적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누님의 연주를 감상하다가 주머니에 잡히는 얼만큼의 동전을 바이올린 케이스에 넣는다. 고맙다며 찡긋 웃는다. 연주에 집중하는줄 알았는데, 돈에 집중하는 중이었다. 뭐 어쩔수 있는가. 배가 고프면 팔이 안움직일 것이다. 
 
##6. 블타바 강
비셰흐라드 구경을 마치고 다시 강을 따라 올라간다. 약 오후 다섯시가 되다 보니 해가 적당히 기울어졌다. 그래서인지 빛을 받은 강물이 새하얗게 빛난다. 원래의 길이보다 더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프라하의 정수리에서 어깨로 내려왔단걸 알려준다. 
 
 강가에서 한 소녀가 백조들에게 빵 부스러기를 주고 있다. 루체른에서 본 백조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하지만 강물이 루체른만큼 깨끗하진 않다. 하지만 이곳 백조들의 자태가 루체른의 아이들보다 더 고풍스럽다. 프라하에 살아서 그런가보다. 계속 큰 보폭으로 강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종아리 근육이 조금씩 땡긴다. 휴식을 취하며 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기에, 또다시 카페에 들어간다. 이번에 들어간 카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커피는 이미 충분히 마셨기에 차를 주문한다. 녹차, 홍차, 과일차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고 한다. 이상하게 녹차가 땡긴다. 그런데 레몬을 넣을지 말지 물어본다. 녹차에 왜 레몬을 넣지? 뭐 좋다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끝이 포크처럼 생긴 무시무시한 칼로 레몬을 크게 잘라 찻잔에 담는다. 쟁반에 가지런히 정리된 다기셋트를 들고 거리로 나간다. 담배를 맛나게 피고 있는 아줌마 옆에 앉는다. 그리고 신발을 살짝 벗고 주변 사람들을 구경한다. 썬글라스를 쓰고 있기에, 나도 자유롭게 그들을 관찰하고, 그들도 부담없이 길을 지나간다. 레몬이 담긴 잔에 녹차를 부어 넣는다. 레몬의 산이 피로를 꽤나 회복시켜줄것으로 보이기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란 생각이 든다. 뭐 레모나 같은 원리랄까. 그런데 이 조합이 꽤나 나쁘지 않다. 마실때는 몰랐는데, 녹차의 마지막 잔을 담을땐 레몬의 신맛이 모두 날아가 버린 상태였고, 그제서야 레몬이 녹차의 떫은 맛을 잡아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보성녹차밭에서 세작과 우전차를 골라 먹을 정도로 녹차를 좋아하던 내가 이걸 처음 알게 되다니. 물론 떫은 녹차를 마실일은 잘 없지만, 이 방법이라면 녹차를 길게 우려먹는것도 가능할것 같다.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나의 녹차 라이프는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녹차를 마저 마시고 강을 건너간다. 아무리 그래도 프라하에서 프라하 성은 한번 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 길이 꽤나 험난하다. 엄청난 인파덕에 나의 원래 보폭으로 전진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어쩔수 없이 일단 저녁을 먹고 그 후의 컨디션에 따라 성을 방문하는 것으로 결심한다. 그리고 철환이가 추천했던 믈레니체로 향한다.
 
##7. MLEJNICE
한글로 이름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어떻게 읽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식당 입구의 모습이 꽤나 잘 디자인 되어 있다. 간판의 디자인을 보니 내부 또한 멋질것이란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었다. 반지하처럼 되어있는 입구로 들어간다. 한명이라고 했더니 혹시 예약을 했냐고 물어본다. 예약은 하지 않았다고 하니 혹시 7:30까지 식사를 마칠 수 있냐고 물어본다. 약 한시간정도의 시간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사실 7시라고 했는지 7:30라고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뭐 음식나오는데 약 15분이 걸렸으니, 이 사람들이 한국인도 아니고 15분만에 식사를 마칠 수 있냐는 말도안되는 질문을 하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난 그렇다고 하더라도 15분만에 식사를 마칠 자신이 있었다.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매뉴판을 보니 역시 뭐가뭔지 모르겠다. 모든음식이 다 괜찮다고 했기에, 난 이 가계에서 가장 맛난것으로 달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꼭 함께 즐기라고 했던 람브루스코 와인을 달라고 한다. 
 
 냉장고에 넣어둔 자그만한 맥주병 싸이즈의 와인이 나온다. 지친 뱃속에 와인을 삼켜넣으니 전신이 후끈후끈하다. 대각선 옆에 앉은 빠박이 형이 큰 족발 같은것을 잘라 먹고있다. 내가 주문한것도 Pork어쩌구였던것을 보니 아마 저것과 비슷한 음식이 나올 것 같다. 예상대로 큰 족발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의 양이 엄청 많다. 매뉴판을 대충 봤을때 약 600g이라고 되어 있던것 같은데, 사실 고기 600g의 양은 꽤나 많은 양이다. 보통 삼겹살 1인분이 약 200g이니, 삼겹살로 치면 3인분치라고 볼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이미 3만보를 걸은 사람이기 때문에 꾸역 꾸역 먹기 시작한다. 돌돌 말려있는 고추를 함께 썰어 먹으며 음식을 즐긴다. 확실히 이동네 사람들이 스위스 사람들보단 음식을 잘 하는것 같다. 아마도 스위스 사람들은 자연이 아름답기 때문에 그냥 밖을 돌아다니기만 해도 스트레스가 충분히 해소 되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음식에 오랜 시간을 들여 맛난 것에대한 집착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몸에 좋은 음식 위주로 식문화가 발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체코의 경우 꽤나 혼란스러운 역사의 폭풍 한 가운데 있었기에, 집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야 할 것이다. 결국 창의력과 에너지를 식문화 발전에 쏟아 부었을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맥주와 음식이 일품인 것 같다. 같은 시점에서 보자면, 브라질이나 남미의 음식또한 단순하다. 자연이 워낙 비옥하기 때문에 그냥 열매를 따다 먹고, 단순히 고기를 익혀 먹어도 삶이 그리 심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반대로 식문화가 엄청나게 발달한 한국, 중국, 일본의 경우 혼란스러운 전쟁이 끊이질 않았고, 덕분에 집 안에서 한정된 자원으로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위해 창의력을 발휘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체코 족발을 먹고 나니, 온 몸에 에너지가 도는 듯 하다. 다시 얼마간의 에너지 흡수 및 명상 시간을 갖고 계산서를 달라고 한다. 와인, 셀러드, 족발까지 포함해서 약 23,000의 가격이 나왔다. 스위스의 구멍가게에서 먹던 감자전 가격이다. 물론 스위스 감자전 또한 감동적이었으나, 이곳의 음식도 감동적이다. 물론 두가지 음식 모두 심각하게 배고픈 상태에서 섭취 했기에, 둘 다 큰 감동을 준다. 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길래, 500코룬을 모두 넣는다. 이정도 에너지이면 프라하 성을 둘러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8. 프라하 성
보조 배터리가 다 떨어졌다. 핸드폰도 배터리가 20%밖에 남지 않았다. 지도야 따로 종이 지도가 있기에 큰 문제가 안되지만,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다면 조금 아쉬울것같은 생각에, 저전력 및 비행기 모드로 설정을 바꾼다. 이정도 상태면 앞으로 4시간은 충분히 사용이 가능하다. 적어도 사진은 아쉽지 않게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인구밀도가 엄청나게 높은 마네수프 다리를 건넌다. 초상화를 그리는 사람들도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다. 강을 보며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난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천천히 천천히 다리를 건너간다. 썬글라스 뒤로 그 얼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참 재미있다. 눈동자의 색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표정이 말하는 그들의 생각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프라하 성쪽으로 다리를 건너오니 사람들이 정말 많다. 철환이가 나에게 비셰흐라드를 추천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말하지 않아도 그것을 먼저 추천해 주는 것을 보면, 나라는 사람의 모습이 내 친구들에겐 어느정도 구체화 된 모습을 가지고 있나보다. 
 
 계속 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올라가다보니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 가까운 쪽의 건물들은 구름에 해가 가려 어둡지만, 저 멀리엔 햇빛이 쏟아진다. 거리가 꽤 있어서 빛의 선이 보이진 않지만,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light curtain현상이다. 카메라의 그리드에 맞춰서 대상을 위치시키고 셔터를 누른다. 터키여행을 가기전에 약 4주간 사진을 배운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미리 배워두길 잘했다. 사실 카메라가 가진 각종 빛의 양이나, 초점등에 대해서 꽤나 많은 것들에 대해 설명을 듣긴 했지만, 사실 그런것보다 구도가 사진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사진과 그림과 모든 창작물이 그렇듯, 작가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대상에게 전달하여, 의도된 감정을 느끼게 하는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사진에도 주제를 부여하고 감정을 담으려 노력하면 분명 그것이 투영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의 날씨와 대상들은 정말 완벽한 수준이었다. 도시들의 모습은 차갑고 쓸쓸하지만, 노란빛의 구름들은 따듯한 모습으로 도시를 지긋히 누르고 있다. 이렇게 밸런스가 잘 맞는 사진은 시간이 흐른뒤 다시 보더라도, 이때의 감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9. 프라하의 밤거리
프라하 성의 내부에 들어가려 했지만, 주변의 모습에 푹 빠져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다시 조금전 건너온 다리쪽으로 내려와 버렸다. 뭐 어쩔 수 있나, 다음에 다시 찾게되면 그때 성에 들어가 보자. 라고 생각한다. 단위 시간당 느낄수 있는 감정의 양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아쉬워 할 필요는 없다. 이동 방향을 확실하게 고정하고자 핸드폰의 지도를 켠다. 배터리가 15%정도 남아있다. 이정도면 숙소에 도착하는것 까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다행이도 숙소까지 계속 직진만 하면 되는 코스이다. 난 다리를 건너 광장을 지나 계속 직진한다. 그리고 어느새 내려앉은 어둠이 왜 프라하의 밤이 아름다운지 느끼게 해준다. 프라하는 밤에 위험하지 않냐고 철환이에게 질문 했었다. 오히려 밤이 아름다운 도시이길래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정말 그럤다. 오히려 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주변구경하며 걸어가다 보니, 길거리에 테이블을 놓고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들이 많다. 아까 먹은 족발이 이미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길래 음식을 더 먹을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직 체코의 맛난 맥주가 대체 얼마나 맛있는지 느끼지 못한 상태이기에, 저 곳중 한 곳에 앉아 맥주를 조금 마시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다. 
 
 딱 맘에드는 멋진 공간이 나올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이런 믿음은 항상 날 배신하지 않는다. 크게 브루어리라고 적혀있는 곳이 보인다. 그리고 거리에 나와있는 테이블엔 마침 빈 자리가 있다. 난 얼른 그곳에 앉아서 다시 전신에 뿌려진 피로감들을 어루만져 달라고 심장에게 요구한다. 불끈 불끈 맑은 피를 공급하고, 더러운피를 정화하며 기다리니 웨이터 형님이 오신다. 난 이 집의 가장 맛있는 맥주를 달라고 한다. 다크가 맛있단다. 맞다. 난 라거는 절대 체질에 안맞는다. 큰 맥주를 시킬까 하다가, 맛없는 맥주를 억지로 마시는것 만큼 괴로운게 또 없기에 작은걸로 달라고 한다. 작은 맥주만 한잔 덜렁 시키니 좋지 않는 눈으로 본다. 아무래도 이 가계의 정직원 인가보다. 다시 체력회복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다보니 이쁘장한 꼬맹이가 맥주를 가져온다. 삼촌의 막걸리 심부름을 다녀오는 조카처럼 해맑은 표정으로 맥주를 건내준다. 난 싱긋 웃으며 맥주를 건내 받는다. 과연 2/5은 거품이다. 하지만 원래 체코 맥주는 거품을 같이 많이 주는게 문화라고 한다. 기꺼히 거품에 코를 꽂아 넣으며 맥주를 들이킨다. 맥주가 달다. 병맥주로 치자면 스페인의 에스트레야가 뒤에 살짝 단맛이 있는데, 살짝 달달한 맛이 나면서도 이것이 맥주라는것을 알려주기위해 씁쓸함이 혀의 양 옆을 건드린다. 이 맥주가 나에게 이롭다라는 판단을 하고, 말 그대로 벌컥컥 삼킨다. 그리고 말 그대로 벌컥컥 넘어간다. 철판으로 된 미끄럼틀에 물을 쏟고, 그 위를 롤러브레이드로 넘어가듯 휘리릭 넘어간다. 대장으로 쏟아져 떨어진 맥주가 정신없이 뱃속에 곤두박질 친다. 뭐야. 이거 너무 맛있다. 이게 체코의 맥주구나. 하고 깨닿는다. 그렇다고 더 마실 생각은 없다. 아직 숙소에 도착하려면 소화해야 하는 거리가 조금 남아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맥주를 마저 마시고 가격을 보니 58코룬이다. 약 3,000원 정도이다. 동전 세개를 내려 놓는다. 맥주를 마시고 동전이라니. 꽤나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숙소로 향한다.
 
##10. Brix hostel
겨우겨우 도착했다. 오늘 걸은 거리를 보니 4만보가 넘었다. 하하. 4만보라니, 스스로 대견스럽다. 3층의 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빠글빠글머리를 한 꼬맹이들이 분주하다. 자세히 보니 다들 생김새가 범상치 않다. 다비드상의 얼굴을 하고 있는 잘생긴 꼬맹이들은 이탈리아 에서 왔다고 한다. 확실히 이태리사람들의 외모는 심각하다. 나보고 이름이 뭐냐길래, Ian이라고 답한다. 아주 아름다운 이름이란다. 이 아이들 프라하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서 모든것이 아름답게 보이나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샤워를 한 다음 Bar로 내려간다. 
 
 사람이 꽤나 많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호스텔의 매출보다 Bar의 매출이 더 클것 같다. 난 내 물건들을 충전하기 위해 멀티탭이 있는 긴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오늘의 사진들을 돌아본다. 40%정도의 실패한 사진들을 삭제하고 나니 뿌듯하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이렇게 그날의 사진을 돌아보고 그날의 일들을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그날그날 느끼는 생각들은 있을테니 그래도 글은 즐겁게 적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많은 생각들과 경험들을 모두 정리하고 자기엔, 몸에 힘이 없다. 아쉽지만 이만 잠들기로 생각한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